굿뉴스홈 서울대교구 | 가톨릭정보 | 뉴스 | 메일 | 갤러리 | 자료실 | 게시판 | 클럽 | UCC | MY | 로그인
DIOCESE OF PYONGYANG
Ⅱ. 평양교구 설정과 남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민(閔德孝, Charles-Marie) 주교의 요청에 따라서 1923년 5월 평양 지목구 설정 준비 책임자로번(Patrick J. Byrne: 方) 신부 M.M 를 선두로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들이 연이어 파견되어 평안도 지역을 관할하게되었다.
1년 뒤인 1924년 메리놀회의 6명의 수녀들이 사제들과 함께 입국했고, 1925년에 한국인으로서 메리놀회에 입회한 김교임 말가리다 수녀 M.M 와 장정온 악니다 수녀 M.M. 가 메리놀회 한국 지부 공동체에 합류했다.

1927년 3월17일 포교 성성은 평안도 지역을 서울 대목구로부터 분리시켜 평양 지목구로 명명하고 초대 지목구장에 번(Patrick J. Byrne: 方) 신부 M.M. 를 임명하였다. 그동안 함께 활동했던 서울 대목구 소속 신부들은 김성학 알렉시오 신부를 제외하고 서울대목구로 복귀했다.

1930년 4월 제2대 평양 지목국장으로 임명된 목요한(John Edward Morris) 몬시뇰 M.M. 은 1931년 건축 중이던 서포 지목구 본부를 준공하여 본부를 이전했고, 1932년 평양에 한국의 첫 방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를 창립하여 그들의 선교 사업에 동참하게 했다. Morris 지목구장의 문서 선교 일환으로 1934년 1월 평양교구에서 창간된 《가톨릭 연구 강좌》는 이후 7월에《가톨릭 연구 강좌》 으로 바뀌어 발행되었다가 1938년 12월에 폐간되기까지 문맹 퇴치 운동과 문서 보급, 한글 교육과 학교설립 문제 등을 비중 있게 다루어 조선인들의 의식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5년 10월에는 '한국 천주교 전래 150주년 및 순교자들의 시복 1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식이 주일 교황 대사 말렐라(P.Marells) 대주교 및 전국 5교구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개최되어 성황을 이루었다.

1936년 8월에 부드(William Booth. 夫文化) 신부 M.M. 가 제3대 지목구장서리로 임명되었고, 1938년 10월에 오세(W.O' Shea) 신부 M.M. 가 제4대 지목구장으로 부임했다. 증가된 본당과 신자 수는 1939년 7월 11일에 평양 교구를 지목구에 서 대목구로 승격시키게 했으며, 오세(W.O' Shea) 신부 M.M. 가 로마에서 주교로 성성 되었다. 선임자들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으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으뜸을 차지한 평양교구의 교우 증가현상은 태평양 전쟁 발발 전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