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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CESE OF PYONGYANG
1. 페트릭 번 주교
2.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
1. 페트릭 번 주교
1888년 10월 26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아일랜드인 페트릭 번과 안나 실즈 번 사이에서 10남매중 7번째로 출생.

1908년 메릴랜드 주 세인트 찰스 대학, 1909년 볼티모어 교구의 성 마리아 신학교에서 공부 했으며 1915년 6월 23일 졸업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다.

평소 해외선교를 갈망하여 메리놀 외방 전교회에 입회하여 1915년 9월 메리놀회 총장 윌시 신부의 비서 겸 참사가 되었고, 1918년 6월에는 메리놀 소신학교 교장을 맡아 4년간 신학생 양성에 힘썼다.
1922년 11월 포교성성에서 메리놀회에 한국의 평안도 지역을 위임하자 페트릭 번 신부는 11월 27일 한국의 첫 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23년 5월 10일 평양 지목구 설정 준비 책임자로 한국에 입국하여 의주 본당에 임시 거쳐를 마련하고 메리놀회 한국 지부를 출범시켰다
이후 본부를 비현, 신의주로 옮겼고, 계속적으로 미국으로부터 메리놀회 신부와 수녀들을 지원받아 교세신장 및 성당 건축에 힘썼다. 1927년 3월 17일 평양 지목구가 서울 대목구로부터 분리 설정되자 초대 지목구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미래 주교좌를 설치할 도시로 평양을 생각하고 지목구 본부를 평양 외곽 서포로 옮겼다.

1929년 8월 메리놀 총회에서 제 1참사 위원으로 선출되어 지목구장을 사임 하였으며, 3년 뒤 메리놀 신학교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메리놀회가 1937년에 일본에 처음으로 진출하게 되자 다시 새 포교지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1937년 7월 17일 교토 지목구장에 취임 하였다.

1947년 8월 12일 교황 비오 12세는 번 몬시뇰을 한국 초대 주한 교황 사절로 임명 하여 다시금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제 교황 사절이 된 번 몬시뇰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한국을 합법적인 독립국가로 인정한다는 교황청 문서를 발표하고 1948년 12월 12일 유엔 총회에서 승인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였다.

1948년 11월에는 전국적인 교회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하여 한국 천주교 중앙위원회를 출범시켰다.

1949년 4월 17일에는 가세라 명의 주교로 임명되어 6월 14일 명동 대성당에서 주교 서품식을 거행했다.
번 주교는 당시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던 종교박해 (즉 홍주교, 신 보니파시오 주교의 체포 및 성직자 수도자들의 체포, 교회 건물들의 몰수등..)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 직전에 이르렀을 때 미국인들을 모두 일본으로 대피시키며 주교님께도 함께 피신할 것을 권유 하였으나 번 주교는 한국의 성직자와 신자들과 함께 남겠다고 피신을 거절하고 교황 사절관에 그대로 머물렀다. 이때 비서이자 2대 평양지목구장을 역임한 부드(Booth)신부도 함께 남았다.
그러나 교황 사절관이 모두 약탈당하고 날로 상황이 어렵게 되자 명동 주교관으로 옮겨 지냈다.

1950년 7월 11일 명동에서 체포되어 다른 외국인 성직자, 수도자들과 함께 투옥되어 인민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평양으로 이송되어 7월 19일에 평양감옥에 투옥되고, 10월 8일에는 만포로 다시 이송되었다. 이어 같은날 10월 8일에는 고산진으로, 그리고 이어 초산진등으로 끌려갔다가 11월 7일 중강진 부근 하창리 수용소로 이어지는 '죽음의 행진'을 겪었다.
이 여정 중에 얻은 고초와 질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는데 함께 끌려갔던 춘천 지목구장 퀸란(T.Quinlan SSC) 몬시뇰(후일 주교)에게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늘 내 소원이었지요, 좋으신 하느님께서 내개 이런 은총을 주셨어요."라고 하였으며, 그리고 비서인 부드 신부에게는 "내가 지닌 사제직의 은총 다음으로 내 삶의 가장 큰 은총은 당신들 모두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수난 받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1950년 11월 25일 62세의 나이로 순교하여 하창리 근처에 묻혔다.
번 주교는 매우 겸손하여 여러 고위직을 역임하면서도 명예나 위엄을 내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으며, 매우 깊은 영성을 지닌 분이셨다.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으라는 오랜 수도회 규칙처럼 자신을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최선을 다해 맞이했다.
영성생활에 있어서 완벽주의자로 매일 밤 모든 이들이 잠자리에 든 시간이면 홀로 성체 앞에서 한 시간 이상의 기도를 하고는 하였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놓쳐도 밤중에라도 성무일도는 꼭 바쳤고, 매일 묵주기도 15단 전체를 바쳤다. 그리고 자신이 두 번에 걸쳐 사목 하게 된 한국을 극진히 사랑하여 그의 주교문장에 무궁화를 그려 넣었다.1)
1)기억의 돋보기 (1984. 바오로딸. 레이먼드 A. 레인)- 번 주교님과 함께 죽음의 행진을 겪고 생환한 부드 신부님의 회고록 '사슬에 묶인 사절'을 바탕으로 저술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