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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CESE OF PYONGYANG
  1. 이규식 베드로   3. 서경석 마르코   5. 최삼준(최자백)프란치스코   7. 송은철 바드리시오
  2. 서정요 프란치스코   4. 강창희 야고보   6. 강유선 요셉   8. 김운삼 요셉
2. 서정요 프란치스코

1890년 1월 8일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풍수원에서 서병순의 3남중 차남으로 출생
병인박해로 조부모가 풍수원으로 피신해 정착한 후 옹기 굽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14세때 동갑인 여규식 마리아와 결혼하였다.
삼촌 서병익 신부가 신학생때 장차 서품을 받으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며 봉사할 것을 약속하여 서병익 신부가 평북 의주 주임으로 발령 나자 함께 이사하여 이들 부부는 각기 복사와 주방 일을 도왔다.
딸을 연거푸 셋을 낳고, 아들 주실 것을 하느님께 간청했고, 만일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첫 아들은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하였고, 이후 아들 넷을 더 낳아 그중 두 명을 사제로 봉헌하였고, 앞서 낳았던 세 딸 중 두 명을 수녀로 봉헌하였다.
서병익 신부가 13년간의(1911- 1924) 의주 생활을 접고 개성으로 전근되자 함께 이사 했으나 1년여가 지나 다시 신의주로 이사했고, 새로 진출한 메리놀 선교사들을 돕는 일을 맡았다.81)

평양근교 서포에 새 교구청이 건립되게 되자 그는 가족을 이끌고 다시 서포로 이주하여 공사현장 감독을 맡았는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수도자 못지않게 기도하며 일하는 모습을 늘 보여 주었다. 공사가 끝난 후에는 새로 생긴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살림을 돕는 일을 하였다.
몹시 가난하여 어려웠지만 나이가 젊고 많음을 가리지 않고 메리놀 수녀들이 ‘프란치스코’라고 부르면 언제나 '예' 하며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봉사였고, 불평 또한 한 적이 없었다. 즉 가난 속에 어렵게 살면서도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의 종으로 겸허하게 한평생을 살았고, 자신의 가족 또한 신앙과 순명 속에서 모든 믿는 이들의 표양이 되었다.

서 정요는 자신의 가정을 훌륭한 성가정으로 이끌었는데 7남매를 기르며 아침 일찍 모두 일어나 아침기도를 함께 바치고, 아침 미사를 마친 후에야 다른 일을 을 하거나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아무리 어려워도 함께 저녁기도를 빠진 적이 없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은 서 정요를 아버지라 불렀고, 실제 그의 두 딸이 이 회에 입회하였다. 그의 두 번째 딸 서 아퀴노 수녀가 허원 1년 만에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을때 아버지를 연거푸 되 뇌이자 ‘예수, 마리아’를 부를 것을 말하며 선종할 수 있도록 격려하였고, 숨을 거둔 뒤에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딸의 영혼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82)

일제말기 수녀원의 사정도 어려워져 더 이상 수녀원에 있을 수 없게 되자 서문고녀 기숙사주방에서 일을 하며 자식들을 양육했으나 과로로 1944년 부인 여 마리아가 죽고, 사위의 주선으로 양조장 일을 하며 양조장 사택으로 옮겨 세 아들과 지냈다.
해방이 되었으나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로 다시금 어려움을 겪던 중 1949년 12월 7일에 관후리 주교좌성당 보좌로 있던 맏아들 서운석(보니파시오)신부가 체포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자식 잃은 아픔은 뒤로 한채 정치보위부원들의 감시 속에 연금되어 있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을 수시로 방문 위로 하였다. 수녀들이 끌려간 아들 신부를 비롯한 신부들의 안위를 걱정하면 내년 1950년은 성년이니 하느님께서 특별한 섭리가 계실지 모르니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기다려 보자고 격려하였다.
1950년 10월 8일 밤 11시경 직장이었던 양조장에 파견 나와 있던 정치보위부원이 회사일로 의논할 것이 있다고 찾아와 함께 나갔고, 이후 아버지를 찾으러 아들 경서(마르코)가 나가고 뒤이어 수녀원 해산 후 집에 와있던 맏딸 원석(요셉) 수녀까지 나간 후 소식이 없게 되었다.
후일 국군이 평양 입성 후 그날 같은 사택에서 불려 나갔던 사람들이 모두 총살된 시체로 발견 되었다고 하므로 서 정요와 그의 두 자녀도 그처럼 총살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83)

81)서 예석 가밀라 증언(서정요의 3녀) 증언 1978.2,21
82)강 루갈다 수녀의 증언 1978.2.14 / 김 릿다 수녀의 증언 p39
83)서우석 신부(서정요의 4남)의 증언 1978.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