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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CESE OF PYONGYANG
  1. 이규식 베드로   3. 서경석 마르코   5. 최삼준(최자백)프란치스코   7. 송은철 바드리시오
  2. 서정요 프란치스코   4. 강창희 야고보   6. 강유선 요셉   8. 김운삼 요셉
6. 강유선 요셉

1901년 평안남도 강서군 성태면 태일리에서 2남 4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서당에서 한학을 조금 공부했다. 총명하고 강한 의지력을 가져 배움에 있어서도 남에게 뒤지지 않아 열심히 수계하며 교리공부에 힘씀 결과 일찍부터 전교사로 이름을 날렸다. 키가 작고 몸집도 작았으나 성격은 활발하고 뛰어난 발표력을 가졌다.
누님중 한분이 마산성당 식복사로 있어 강 요셉도 마산성당에서 여러 가지 잡무를 보며 지냈다. 미국인 메리놀회원들이 전교하던 시기여서 언어소통이 잘 안되고 신앙의 불모지인 평안도 지역은 많은 한국인 전교사가 필요했다. 이때 강 요셉은 두터운 신덕과, 해박한 교리지식, 그리고 매사에 충실함이 인정되어 전교사로 뽑혀 순안, 서포, 순천, 숙천, 영유등지를 순회하며 모범적으로 전교회장의 임무를 수행했다.94)

그는 또한 가톨릭 운동에도 앞장서 가톨릭 문화 계몽에 참여하고 1932년 평양 관후리 성당의 신심단체인 가톨릭 소년군(보이스카웃)창단에 최삼준 회장과 함께 동참하여 큰 기여를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제때 징발 당했던 관후리성당 부지를 되찾고 다시금 성전을 건축 하게 되자 성당건립위원회 상임 이사가 되어 부감목 김필현 신부와 함께 자전거로 먼 곳,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교구 내 본당들과 큰 공소 등을 다니며 건축기금 모금에 헌신하였다.95)

성당의 외형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던 1949년 건축 중인 주교좌성당을 평양시 인민위원회에 양도하라는 통보를 받고 수없이 인민위원회와 논쟁을 하였다.
1949년 6월 10일 이 문제로 소환장이 나오고 부감목 김필현신부, 교구 경리담당 최항준 신부와 함께 시 인민위원회에 출두한 후 소식을 알길 없다.96)

94)김구정 증언 1983년11월8일 / 강 베드로 수녀 증언 1982년 7월
95)김구정, 강현홍 신부 증언 1983년 2월 9일
96)붉어진땅의 십자탑 (장선흥 신부 저 1951,12,8),p116-119